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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에는 대대손손 내려온 1만여 통의 편지부터 온갖 생활유물과 돌까지 모으는 별난 수집가가 살고 있습니다. 바람과 먼지 빼고 옛것이라면 죄다 모은다는 박현순 씨(80세)입니다.
밥만 먹고 나면, 갓을 쓰고 온갖 골동품을 수집하러 다니는 현순 씨. 아내 나일금 씨(82세)는 구름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남편 때문에 평생 가슴에 ‘참을 인’ 자를 새기며 천불 나는 속을 어르고 달래며 살았습니다.
부부는 밥벌이로 관엽식물 농원을 하고 있는데, 남편은 나 몰라라 농장 일은 뒷전입니다. 꽃 팔고 수금하는 족족, 골동품 사는 데 돈을 다 쓰질 않나, 유림 회장까지 맡고 있어 이틀돌이로 출타합니다.
결국, 농장 일에 수집품 관리까지 전부 아내의 몫이 됐습니다.
손발톱이 닳을 만큼 일을 열심히 하자는 의미로 ‘손톱 깎지 말자’를 신조로 삼았다더니, 남편은 골동품만 바라보는 탓에 정작 손톱이 닳고 얼굴이 쪼글쪼글해진 건 아내 일금 씨입니다.
모아들인 골동품이 쌓일 대로 쌓여, 보관 하우스를 직접 지은 것도 모자라, 머무는 사랑채에까지 골동품을 모셔 와, 발만 겨우 뻗고 잔다는 남편.
옛것을 보물처럼 여기는 수집가 남편이 이토록 과거를 끌어안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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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부부가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밖에 뒀던 화분을 온실로 들이고, 화분에 새 나무를 심는 일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맨손으로 둘이 가꿔온 농원이지만, 나이 앞에서는 장사 없는 법입니다.
부부 둘만의 힘으로는 버거워 인부들을 부르고, 근처 사는 조카까지 일을 도와주러 왔습니다.
남편의 진두지휘로 일사불란하게 일을 하는 젊은 인부들과 조카를 보고 있자니, 살아있었다면 비슷한 나이였을 아들이 유난히 그리워집니다.
슬하에 4남매를 둔 부부. 십여 년 전, 하나뿐인 아들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아내는 치아가 다 빠지고, 몸이 반쪽이 됐으며, 얼굴이 다 상할 만큼 비통함이 컸습니다. 농장에서 온종일 식물을 돌보며 겨우겨우 세월을 버텨낼 수 있었지만, 여전히 당신을 부르는 듯한 아들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곤 한다는 아내 일금 씨.
추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남편도, 아들의 죽음 이후 더더욱 과거를 모으며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4남매가 학교 다닐 때부터 봤던 책을 여태껏 버리지 못한 남편.
각자의 방식으로 아픔을 잊기 위해, 어쩌면 평생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과거에 머무르는 두 사람. 부부의 시간이 다시금 제 속도로 흐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흘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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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병인 허리통증 때문에 복대를 두르는 게 일상이 된 아내. 쓸데없어 보이는 청동 흉상을 보고 있자니, 가슴마저 답답해집니다.
이른 아침부터 화분배달을 하고 오겠다던 남편이 수금한 돈으로 위인 흉상을 구매해 온 것입니다. 남편에게는 금쪽같은 보물이지만 아내 눈에는 그저 고물. 젊은 시절 몇백, 몇천짜리 고물을 사 모을 때도 얻었다는 둥, 헐값에 구매했다는 둥 거짓말을 하더니, 이번에도 얻은 거라며 퉁치려 듭니다.
고물을 모으지 않으면 당신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는 남편이기에 여태껏 참고 살아왔건만, 고물에 밀려 자신은 찬밥신세가 됐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립니다. 마침, 오래된 물건을 산다는 방문 고물상의 안내방송이 동네에 울려 퍼집니다.
이때다 싶어 고물상에게 남편이 아끼던 석상을 팔아 넘겨버린 아내. 뒤이어, 이 일을 알 리 없는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렵게 모셔 왔던 석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집안 곳곳을 뒤져봐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물건의 행방을 아내에게 물었더니 웬걸! 팔아넘겼답니다.
돈보다 귀히 모셔둔 소중한 물건을 멋대로 팔아버린 아내가 남편은 원망스럽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취미도 딴판인 동상이몽 부부는 서로에게 보물 같은 골동품, 사랑스러운 식물 같은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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